오롯이 오롯이 나의 것이 되는 나의 것
Truly, Sincerely, Solely becoming what is mine (2023~2024)
photography, theater, 16mm
몫을 찾아서 ● 현선의 엑스는 메일에 이렇게 적었다. '내 동의 없이 네 작품에 내 이메일을 사용하지 말아줘.' 시작은 끝이었다. 이보다 디디기 좋은 폐허가 있을까? ● 나와 현선은 여름의 문턱에서 만났다. 밑바닥이 드러난 커피의 얼음이 다 녹을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업에 대해서, 아니 엄밀히 말하면 불행의 순간이 작품이 되는 일에 관해서 이야기 했다. 그러나 그 불행이 '나의 멋진 작품'이 되는 불행에 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았다. 그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빛과 어둠으로 피사체를 가늠하는 일이 사실, 자신의 어둠으로 빚은 빛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는 현선이 사이에 조심스럽게 펼쳐놓은 이미지를 살펴보았다. 어쩐지 잔주름이 만져지는 것 같았다. 시간의 허리에서 지나치게 도톰하거나 가장 연약한 부분마다 한쪽 눈을 맞대어 만든 현선의 세계는 가히 모순적이었다. 짧아서 길었다. 단편이 모여 이룬 기나긴 장편의 서사였다. 작품은 채도 없이 따뜻했고, 불안해서 아름다웠다. 나처럼 현선의 작품을 처음 보는 관객이라면, 이 기묘한 아이러니에 방점을 두고 전시를 읽어주었으면 한다. 이 전시는 끝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결말 뒤에 책을 덮고 나서 시작되는 하나의 이야기이다.
현선은 평범한 여성이다. 현선은 평범한 여성이니까 사랑을 했다. 현선은 사랑했으니 이별했다. 이별한 현선은 예술가다. 예술가 현선이 예술가라는 사실을 엑스도 알고 있다. 엑스는 현선에게 무례한 메일을 보냈다. '내 동의 없이 네 작품에 내 이메일을 사용하지 말아줘' 듣고 같잖다고 생각했다. 나였으면 보란 듯이 책에 영원히 박제하여 엑스 위에 제곱을 얹어 더한 소문으로 남기는 일을 했겠지만, 현선은 사진작가다, 현선은 나와는 달리 너머를 볼 줄 안다. 늘 그랬듯이 뷰파인더에 걸린 풍경의 너머 대신 '다음'을 생각했다. 현선의 '다음'은 지금의 미래시제가 아니다. 이것은 선점에 관련된 이야기다. 엑스로부터 강제로 '다음'의 말을 빼앗긴 현선이 자신의 몫을 찾는 것으로부터 이 전시는 시작된다. 그럼, 이제 '오롯이 나의 것이 되는 나의 것'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현선의 엑스가 남겨놓은 몫에 대해 생각을 하다 보니 한 가지 수식이 생각났다. 여기 사람과 사람 사이에 문제가 있다. 그러나 미지수 엑스는 애초에 노답이었다. 답이 없기 때문에 이 수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무엇을 덧붙여도 구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답이 없다는 것을 알아내려면, 실패를 증명해야한다. 빈종이 위에는 현선이 엑스를 풀기 위해 써 내려간 몇 해의 시간이 놓여있다. 현선은 시간을 본다. 엑스를 향해 감정의 부등호를 가학적으로 벌려도 결코 이퀄이 될 수 없는 것을 알아낸다. 사랑은 이처럼 불공평하다. 그렇다고 답이 없는 이 문제가 단 하나도 남는 것이 없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그가 말한 것처럼, 엑스가 스스로 자신의 자리를 지우면 현선이 풀어낸 이 수많은 수식은 사라지는가. 아니다. 현선은 과감히 엑스를 그 자리에 둔다. 대신, 자기 자신과 엑스를 나누고 남은 나머지를 작품으로 남긴다. 나를 남기기 위해서 버리지 않고 남겨둔 나머지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현선은 증명해 냈다.
그러므로 현선은 비로소 우리에게 말한다. 그날 이후, 현선은 때때로 하얀 공간 벽에 기대어 현선은 회색을 연습한다. 단순하지만 분명하게, 하양에서 검정으로 점점 진해지며 전해졌다. 그녀는 하얀 벽 위에서 검정으로 자랐다. 현선은 '오롯이 오롯이 나의 것이 되는 나의 것'을 알아내기 위해 제 3자의 목소리를 빌어 '다음'의 이야기를 상영했다. 그것은 몫을 가지지 못한 나머지의 이야기였다. 답장 없이. 한 사람의 말을 마침표 뒤에 이어가야 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현선은 자신의 얼굴을 드리우고 '누군가의 사진'에서 익숙한 사람을 발견하며, 익숙한 장면에서 당신을 '잘랐'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런 날들이 있었다'고 생각하며 걸었다. 현선은 '만성 우울'이 있었지만, 그것은 '어떻게 이렇게 개같'은 세상에 한 여성으로 '오롯이'살아남아 있기 때문에 일어난, 생존 중인 모든 인간이 가진 서글픈 숙명의 해프닝일 뿐이었다. 해프닝은 때때로 이 삶에서 여성을 부끄럽게 만들기도 했다. 안정제를 복용하거나 오늘의 운세에 나의 운명을 기대지 않으면 하루도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슬픔은 어느 날의 현선을 덮쳐오기도 했다. 현선은 '생존을 신고'하는 일 따위 주변에 하지 않았다. 그것은 실수가 아니었다. 현선은 일부러 그렇게 했다.
나는 현선의 동의 없이 현선 혹은 모두의 이야기를 나의 서문에 이용했다. 이것은 곧 내가 생각하는 이 전시 기저에 깔린 현선의 이야기이다. 모든 이야기가 그렇듯 마치지 않고 점점 그 점 뒤에 이어 붙일 현선의 사적인 이 이야기를. 더는 엑스에게 점령당하지 않을 그녀의 다음 이야기를. 나는 감히 다음의 현선을 짐작하고 '오롯이 나의 것이 되는 나의 것'에 남겨진 나머지가 가진 불분명한 몫을 온전히 느낀다.
■ 이소호